2분 15개 / 5분 1개 / 두상연습
--매일 필사--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저렇게 제멋대로고 충동적이고 마음 여린 이상한 사람. 이상한 나의 할아버지. 저 엉망진창인 사람.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아버지가 씌워준 우산을 쓰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할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냥 한두 시간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평생 좋은 소리 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 했는데 그게 고작 부끄러움 때문이었다니. 죽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부끄러움을 죽여가며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걸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가끔씩 그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비어져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내 적막한 마음에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어.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 백영옥]
어느 나라에 가든 어렵지 않게 시차에 적응하고, 그 나라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몽골에 가면 태어날 때부터 달리는 말을 탔던 몽골인처럼 보이고, 인도에 가면 평생 손으로 밥을 먹었던 인도인과 흡사해 보인다. 어디서도 섞이거나 스미는 사람들. 온몸에 흙과 바람의 냄새를 싣고 다니는 사람들.
사강은 자신이 한 번도 카메라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사진을 찍을 만큼 단란한 가족을 이루어본 적도, 사진에 찍힐 만큼 아름다운 연인이었던 적도 없었던 것이다. 문득 실패한 자신의 연애가 결국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황당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무 사이에 걸린 저런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고도 찍어보고 싶단 욕망이 생기지 않는 삶이 행복할 리 없었다.
도심의 끝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정전 속에 두 남녀가 서 있다면, 한 사람이 넘어지려 할 때 다른 한 사람이 몸을 잡아주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메리카 에어라인 11편이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충돌하던 순간, 몇몇 사람들의 손에 휴대폰이 있었다. 그때 수화기를 든 그들이 누군가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살려줘’, ‘무서워’, ‘죽고 싶지 않아!’가 아니라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같은 말들이었다.
[파과 / 구병모]
그러니까 금요일 밤 시간대의 전철이란 으레 그렇다. 밀착을 넘어 연체동물의 빨판처럼 소리에게 흡착되다시피 한 생면부지의 몸 사이에 종잇장만 한 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누군가 입을 열거나 숨을 쉴 때마다 머리 위로 끼얹어지는 고기 누린내와 마늘 냄새 문뱃내에 들숨을 참더라도, 그 냄새가 닷새간의 노동이 끝났음을 알려주기에 안도하는 시간. 과연 내년에도 혹은 다음 달에도, 심지어 당장 다음 주에도 이 시간에 전차를 탈 수 있을지에 대한 실존의 불안을 잠깐이나마 접어 두는 시간.
나름의 아픔이 있지만 정신적 사회적으로 양지바른 곳의 사람들, 이끼류 같은 것 돋아날 드팀새도 없이 확고부동한 햇발 아래 뿌리내린 사람들을 응시하는 행위가 좋다.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으로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언감생심이며 단 한순간이라도 그 장면에 속한 인간이 된 듯한 감각을 누릴 수 있다면.
[딸에 대하여 / 김혜진]
딸애의 목소리는 뜨겁고 그 애의 목소리는 적당히 서늘하다. 차가운 것은 아래로, 뜨거운 것은 위로. 곡선을 그리며 만들어지는 원. 그 둘을 섞으면 딱 적당한 온도가 만들어질 것 같다.
이 애들은 세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책에나 나올 법한 근사하고 멋진 어떤 거라고 믿는 걸까. 몇 사람이 힘을 합치면 번쩍 들어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거라고 여기는 걸까.
[한 말씀만 하소서 / 박완서]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 (시편, 15~16)
주여,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다 왜 이렇게 진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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