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공부

09.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

M.R. 2024. 4. 2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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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심심한 M.R.입니다. 오늘은 유명한 그림이지요 절규를 그린 에드바르트 뭉크에 대해서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자화상(1895)
에드바르트 뭉크(노르웨이, 1863년 - 1944년)

 

 

 

에드바르트 뭉크(노르웨이어: Edvard Munch, 1863년 12월 12일 ~ 1944년 1월 23일)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입니다. 노르웨이에서는 국민적인 화가로 그의 초상이 1,000 크로네 지폐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新)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점묘의 수법을 사용하여 삶과 죽음에의 극적이고 내면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1892년 베를린으로 이주, 그곳의 미술 협회에 출품했습니다. 그는 주로 심볼리즘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언어를 개발했고, 독특하고 특별한 작품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예술적 영향은 현대 미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국제 미술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뭉크는 스웨덴-노르웨이 로이텐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빈민가에 사는 의사였습니다. 그 빈민가의 절실한 생활은 그의 마음에 새겨졌으며, 어릴 때에 어머니는 결핵으로 사별하고, 이어 누나까지 사망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인한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종교에 의존하다 못해 아이들에게 공포 동화를 읽어주고 종교적 행위를 강요하는 등 정신적 학대를 아이들에게 일삼는 광신도가 되었기에 뭉크는 평생 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었습니다. 죽음과 병에 대한 환각(망상)은 그에게 마음의 벽을 쌓게 했습니다.

 

이런 우울한 유년시절을 보낸 뭉크는 자신을 돌봐준 이모를 통해 그림을 접하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캔버스에 담아내며 어두운 현실을 잊고 견뎌내곤 했습니다. 18살에 아버지의 강요로 기술학교를 가게 되었지만 병약한 체질 탓에 학교를 자주 결석했습니다. 또 그림에 대한 열망을 끊을 수 없던 그는 기술학교를 그만두고 국립 왕실 미술 학교를 가게 됩니다.

당시 뭉크는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학생 시절 개인전을 열고 프랑스 유학생으로 선발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때 프랑스 유학 시절 뭉크는 후기 인상주의 특히 고흐의 화풍에 큰 영향을 받고 색채를 강하게 바꾸어 그리는 화법을 구사, 자신의 화풍을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표현주의로 노선을 정하게 됩니다. 이후 한 화가의 추천으로 독일로 가서 첫 개인전을 열지만 당시 독일 화풍과 정반대이다 못해 우중충한 분위기의 뭉크 그림은 사람들에게 여러 혹평을 받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내면을 그려내는 뭉크의 화풍은 큰 찬사를 받게 되며 이후에 노르웨이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는 등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다만 이런 성공과 별개로 뭉크의 연애사는 그의 그림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큼 우중충했으며, 뭉크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여자와의 관계가 아예 전무했던 건 아니었으며, 밀로 탈로, 다그니 유엘, 툴라 라르센이라는 세 여자와 각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다만 셋 중 어느 누구와도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뭉크의 첫사랑은 헤이베르그라는 크로아티아 사교계 유명인사였습니다. 그녀는 해군 장교의 아내였으며 당시 신여성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고, 팜므파탈의 기질이 다분했습니다. 뭉크는 헤이베르그를 사랑하며 중독과도 같은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되지만 여기저기서 인기가 많았던 밀리는 뭉크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습니다.  뭉크는 크게 상처를 입고 여자에 대한 혐오와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됩니다. 이때 탄생한 작품이 <흡혈귀> 또는 <사랑과 고통>이라고 불리는 4점의 작품입니다.

 

 

뱀파이어 (1893)
에드바르트 뭉크 (노르웨이, 1863~1944)


 

이후 뭉크는 베를린에서 살면서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셰프스키(Stanisław Przybyszewski) 등의 예술가와 교류하였는데, 이 프시비셰프스키에게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다그니 유엘(Dagny Juel)을 빼앗깁니다. 뭉크는 '질투'나 '이별' 등의 그림을 통해 다그니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결국 다그니는 1893년 프시비셰프스키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이에 분노한 뭉크는 배신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마돈나'를 그리게 됩니다.

 

Madonna (1895–1896)
Edvard Munch (Norwegian, 1863 - 1944)

 

 

 



그 후 한동안 좌절에 빠졌던 뭉크는 그 후 툴라 라르센(Tulla Larsen)이란 여자와 교제하게 됩니다. 그동안 뭉크를 떠나 상처를 주었던 여자들과 달리 툴라의 경우 그보다 4살 더 연상인 연상녀로서 예술 방면에 해박하고 성격도 적극적이어서 뭉크와 깊은 관계를 지녔지만 그 사랑이 너무 지나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뭉크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고 결혼을 요구했습니다. 점점 툴라를 멀리하는 뭉크에게 툴라는 자살하겠다고 협박합니다.

 

뭉크의 대표작 중 하나는 "절규"(The Scream)으로, 이 작품은 1893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절규"는 뭉크의 불안과 고통을 표현한 작품으로, 그의 예술적 성취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작품은 그의 삶과 작품에서 고요한 테마와 대조적으로 강렬한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절규 외에 "사랑의 새벽" (The Dance of Life), "포함된 여인" (Madonna), "생명의 나무" (The Tree of Life)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며, 그의 작품은 종종 사람 간의 관계, 죽음, 사랑, 고통 등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삶의 주제를 다뤘습니다.

 

The Scream (1895)

 

 

 

 

병든 아이(1907)
에드바르트 뭉크(노르웨이, 1863년 - 19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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