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오늘은 105주년 삼일절(3·1절)입니다.

M.R. 2024. 3. 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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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jsmeno.tistory.com/100

 

안녕하세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심심한 M.R.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5대 국경일 (광복절, 제헌절, 한글날, 개천절) 중 하나인 삼일절(3·1절)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날이면서 대한민국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자, 태극기를 달아봅시다!

 

 

출처 - pixabay

 

 

게양방법 : 깃봉과 깃면의 사이를 떼지 않고 답니다. 

게양시간 : 07 : 00~18 : 00
(태극기는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에 따라 매일 24시간 달 수 있습니다. 심한 비바람이나 악천후 등으로 국기가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게양하지 않습니다.)

 

 

 

 

3·1절(三一節, 영어: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Day)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된 국경일입니다.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날이기도 합니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이후 1920년에 <독립선언일>(Korean Independence Day)이라는 국경일로 지정되어 재외교포와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가에 의해 그 기념이 시작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1946년 3월 1일 제27회 기념식을 기해 국가 경축일로 지정되었으며, 대한민국 제1공화국 수립 이후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공포함으로써 국경일로 재지정되었습니다. 이는 2005년 12월 29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3ㆍ1 운동 때 유관순, 손병희를 포함해 3000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날에는 정부 주최로 3부 요인은 물론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모여 기념식을 거행하여 대한민국의 헌법 기본정신인 3.1 정신을 되새깁니다. 이와 함께 나라의 광복을 위해 싸우다가 순국한 선열들의 유족 및 애국운동가들로 구성된 광복회 회원들은 따로 파고다 공원에 모여 그날의 깊은 뜻을 되새기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또한 민간 차원의 갖가지 문화 공연도 이날에 베풀어지며, 전국 관공서 및 각 가정에서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게양합니다.

 

 

 

 

 

3·1 운동(三一運動) 또는 3·1 만세 운동(三一萬歲運動) 또는 대한 독립 만세 운동(大韓獨立萬歲運動)은 일제강점기에 있던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 운동을 시작한 사건입니다. 기미년에 일어났다 하여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줄여서 기미운동(己未運動)이라고도 부릅니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을 계기로 고종의 인산일(장례일)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입니다. 최근, 본 운동의 규모와 영향력을 고려해 3.1 혁명(三一革命)이라고 부르자는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민족 대표 33인으로 부르며, 이외에 만세 성명서에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직접적, 간접적으로 만세 운동의 개최를 위해 준비한 이들까지 합쳐서 보통 민족 대표 48인으로도 부릅니다. 이들은 모두 만세 운동이 실패한 후에 구속되거나 재판정에 서게 된다. 약 3개월가량의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조선 총독부는 강경하게 진압했습니다.

조선 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 수가 106만여 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900여 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습니다. 한편 신복룡 교수나 일본의 야마기 겐타로 약 50만 명 정도가 3·1 운동에 참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19년 3월 당시 일제강점기 조선의 전체 인구는 1,678만 8천400명이었습니다.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면 당시 조선 인구 중 2.76%에서 2.97%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3.1 운동을 계기로 다음 달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서는 3.1 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한편 3.1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에 의한 강경책을 펴던 조선 총독부는 민족 분열책인 일명 문화 통치로 정책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흥선대원군의 탄압후유증(7천여명 천주교인 살해)으로,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글 출처 - wikipi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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