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공부

01. 아르누보 시대 대표 일러스트레이터 '알폰스 무하'

M.R. 2024. 2. 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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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심심한 M.R.입니다.

 

 

저는 매일(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ㅎㅎ) 크로키 연습을 하면서

일러스트를 잘 그리기 위한 동영상 강의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거지만 그림에 관한 이론도 중요하지만 다른 작가들의 멋진 그림을

감상하면서 그림을 보는 눈도 참 중요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명작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서

다양한 그림의 세계를 경험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제일 처음으로 들여다볼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알폰스 무하'입니다. 

무하의 작품은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컬러에 모델인 여성의 아름다운 매력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며
꽃과 그 외의 다양한 아름다운 문양의 배경을 사용함으로써 그림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줍니다. 

 

 

 

 

 

 

알폰스 마리아 무하

(  Alfons Maria Mucha [ˈalfons ˈmuxa]  1860년 7월 24일 ~ 1939년 7월 14일  )

 

알폰스 무하는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체코의 화가이며 장식 예술가입니다. 

상업 미술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가로도 평가받고 있지요.

 

 

 

알폰스 무하의 이름을 떨치게 해 준 공연 포스터 <지스몬다>(1895)

 

 

 

알폰스 무하는 모라비아의 이반치체에서 태어났습니다.

1879년 빈으로 옮겨 무대 배경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1881년 회사가 문을 닫게 되자 모라비아로 돌아가서

프리랜서로 장식 예술과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미쿨로프의 카를 쿠헨 백작이 흐루쇼바니 엠마호프 성과 벽화를 부탁한 뒤에

그의 그림에 감명받아 뮌헨 미술원에서 정식으로

미술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습니다.

 

1887년에는 파리로 가서 Académie Julian과 Académie Colarossi에서 미술을 배우면서

잡지와 광고 삽화를 그렸습니다.

1894년 Théâtre de la Renaissance에서 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알리기 위한

석판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무하의 아름다운 포스터는

큰 호평을 받아 유명해졌습니다.

 

 

En l'honneur de Sarah Bernhardt – ses admirateurs et ses amis (1896) / 포스터

 

 

 

 

 

 

 

 

그는 이때부터 많은 회화, 포스터, 광고, 책의 삽화를 그리고 보석, 카펫, 벽지 등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러한 스타일은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양식으로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가장 유명한 그의 전형적인 회화는 젊고 건강한 여성이 네오클래식 양식의 옷을 입고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그의 아르누보 스타일은 많은 사람들이 흉내 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이런 상업적인 성공에 대해 부담스러워했으며

보다 고상하고 위엄 있는 예술과 고향에 대한 예술적 관심에 집중하고 싶어 했습니다.

 

 

 

무에&샹동, 드라이 임페리얼(1899) / 포스터

 

 

 

 

무하는 1906년 미국에 초대받아 1910년까지 있었습니다.

체코 공화국으로 돌아온 후에 그는 프라하에서 멀지 않은 즈비로 그 성의 거대하고 크리스털로 된

큰 방 안에서 자신의 작품에 몰두하였습니다.

 

 

 

이후 18년 동안 그의 붓 아래에서 20개의 기념비적인 웅장한 작품이 나왔습니다.

슬라브 민족 역사에 있어서 변혁의 단계를 묘사한 

‘슬라브 서사시(Slav Epic)’라는 연작 그림을 남기기도 합니다.

  <조국의 역사에 선 슬라브인들> <불가리아 황제 시메온> <얀 후스의 설교>

<그룬반트 전투가 끝난 후> <고향을 떠나는 얀 코멘스키> <러시아의 농노해방령>과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Epopeia Eslava - Ciclo I (1912)

 

 

 

이 기간 동안 그는 현대적 스타일로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들이었던

<임페리얼> 그리고 자치의회 건물인 <유럽>의 인테리어 작업을 했습니다.

또한 곧 준공될 성 비투스 대성당의 메인 유리를 스케치했습니다.

 

 

1918년 독립된 체코 정부가 형성된 후에

무하는 <관제적 양식>인 체코의 기하학적 양식의 창조에 몰두했습니다.

그의 재능은 새 정부가 쓸 우표, 은행권, 문서 등을 디자인했습니다.

1928년 그는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하고 프라하에 이를 헌정했습니다.

당시의 프라하에서는 모든 <슬라브 서사시> 작품 전체를 전시할 만한 갤러리를 찾을 수 없어서

슬라브 서사시는 전쟁 후에 일시적으로 모라비아 성에 일시적으로 출품하였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첫 번째 우표는 무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무하의 애국심은 히틀러의 독일 정부가 그를 적으로 간주한 명부에 포함할 만큼 유명했습니다. 

1939년 3월 프라하가 독일에게 점령된 후에 게슈타포는 몇 번이나

고령에 다다른 무하를 검거해서 심문을 가했습니다.

그 결과 무하는 폐렴을 앓게 되었고 1939년 7월 14일에 사망했습니다.

글, 그림 출처 - wikipedia / artv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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